‘절망 속 홀로서기’로 전자책 1권이 2024년 11월쯤 먼저 판매됐었습니다.
이전 글에 내용과 사진을 더 보충하였고, 제목이 어렵고 와닿지 않다는 의견들이 있어서 제목을 바꿨습니다. 혼선을 드려 죄송합니다.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신 독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누군가에게는 제 글이 희망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프롤로그: 예상치 못한 삶의 전환점]
결혼을 앞두고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로 경추 골절과 뇌좌상으로 사경을 헤매었고, 한 달여 만에 의식을 깨고 보니 손가락 하나 끔쩍 못하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하지도 않은 운전자(가해자)가 되어 자기 과실로 인한 일반 사고 처리로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병원비와의 싸움이 시작되고, 이와 함께 누명을 벗기 위한 기나긴 법정 다툼을 하며 끔찍한 절망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마비된 몸은 뒤로한 채 억울함 없이 죽었으면 하는 생각만으로 온 정신이 재판에만 쏠린 상태였고, 6년 넘게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법정 다툼을 하며 매 순간 마음으로 통곡했고, 밤마다 “너는 내 아들을 죽인 살인자 XX야”라는 환청 속에 가슴에 피멍을 안고 살아야 했다.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며 큰 고비를 넘기는 듯했지만 이젠 가족들과 불화를 겪으며 또 다른 고통의 시간을 겪게 되고, 결국 전신마비의 몸으로 몇 사람의 도움을 받아 도망치듯 집에서 나와 시설 같은 몇 곳을 전전하게 된다.
인천 00 병원 목사님의 소개로 친인척 하나 없는 여주에 와서 노인병원에서 지내게 됐고, 전신마비의 몸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하게 된다. 그런 힘겨운 시간 가운데 가깝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밑도 끝도 없는 뒷담화와 모함을 수도 없이 당하지만, 그 와중에 또 다른 돕는 손길이 있었고, 이젠 꿋꿋하게 자립의 꿈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2023년 또한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의 연속으로 제2의 죽음을 겪은 한 해였다. 상반기 6개월은 폐렴으로 가래조차 뱉지 못해 27년 전에 했던 고통스러웠던 썩션을 시도하며 2월과 6월 두 번을 이천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하반기 6개월은 경련 억제제와 근육이완제를 아무리 먹어도 듣지 않아 경직과 살인적인 통증 그리고, 혈압까지 올라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상태로 ‘이젠 정말 죽었으면 좋겠다.’란 생각밖에 하질 않았고, 우리 집에 다녀간 몇 분은 자기들끼리 내가 죽을 것 같다고 하면서 “어떡하면 좋니?”라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여주의 재활의학과에서 한 달, 또 분당의 대형병원에서 일주일 넘게 입원하고, 한 달 정도 약 처방을 받았음에도 도무지 듣질 않아 “차라리 죽여주세요”라고 매일 기도했다.
동생이 병원을 수소문했는데 큰 병원들은 최소 3~6개월 이상 지나야 의사와 면담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내 목숨이 너무 질긴 것에 대해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8년 입원했던 서울 재활전문병원의 과장님을 동생이 찾아 예약을 해줘 26년여 만에 교수님을 만나게 됐는데, 교수님은 내 상태가 위중함을 알고 바로 입원시켜주었다. 한 달 정도의 입원을 통해 이젠 평상적인 삶으로 돌아가 살고 있다.
2023년은 이렇듯 병원살이를 밥 먹듯 했고, 당뇨병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사실 난 삶에 대한 미련은 없다. 그저 사는 날까지 담담히 살아갈 뿐이다. 내 삶의 주권자가 내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 절망의 시간 가운데 상상도 못 했던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고, 그분의 도움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많은 기적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27년여를 살면서 경수 손상으로 호흡도 힘들지, 욕창은 심심하면 생기지, 대소변도 마비됐지, 내 손으로는 아무것도 못 하니 모든 걸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라고 되물을 것 같다.
또다시 내게 행복과 기적에 관해 물어 온다면 “현재의 일상적 삶이 가장 큰 기적이자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매일 같이 각종 사고와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피해자나 그 가족들의 공통된 말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은 한 달에 얼마를 버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 달에 2천만 원 넘게 벌고 있고, 당신도 그렇게 벌고 있다.”라고 말할 것 같다. 나는 27년 전 그렇게 큰돈을 일주일 간격으로 분할 해서 청구받았고, 병원에서 쫓겨나면 오갈 데 없는 영락없는 거지 신세가 되어 끔찍한 병원 생활을 이어 나갔다.
- 1997년 3월 교통사고와 죽음의 고비 가운데 가해자의 누명을 쓰고 6년여의 재판을 했고,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 노인병원에서 사회복지사와 평생교육사를 꿈꾸며 사이버대학에서 2개의 자격증을 취득
- 전신마비 장애인이 일가친척 한 명 없는 여주에서 독립해 생활하고 있음.
- 독립하면서 독서동아리 모임을 주도
- 문해교육반을 만들어 5~6년을 무급으로 교육하면서 장애인 야학이 만들어짐 (여주시 문해교육사 3급 취득)
- 버팀목 장애인 야학에서 2019년~2024년 5년간 교장 역임
- 장애인식 개선 강사로 활동
-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중증장애인 자조 모임 리더’로 8년 정도 활동
-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장애인 활동가로 활동
- 여주장애인복지관에서 장애인편의시설 점검단 ‘소리향기’ 단원으로 10여 년째 활동 중
- 2023년 2월부터 11월까지 폐렴과 경직과 통증으로 또 다시 죽음을 경험함
- 시련 가운데 인내를 배우며 나만의 행복을 만들어 가고 있음